자본주의 최정점의 심볼이 된 친환경의 아이콘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증권가에서의 복장은 잘 다려진 셔츠와 수트를 입은 화이트칼라 워커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 금융의 중심가인 여의도만 가더라도 이런 복장의 직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금융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 역시 위의 사진처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래 미국의 금융업은 영국 이미자들에 의해 형성되어, 그 안에서의 입는 옷 역시도 영국의 복식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항상 잘 차려진 정장을 입곤 했다. 더구나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미 평균 연봉 4억이 넘어가는 월가에서의 복식은 그들의 부와 명예를 보여주는 수단 중에 하나가 되었다. 톰브라운, 아르마니, 프라다 등 럭셔리 정장 브랜드들이 대세를 이루어 월가 증권가를 휩쓸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고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부르는 월가에서 이 정도의 복식은 사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였지만, 이런 형상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로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금융 업계의 위기가 고조되자 당시 월가에서는 복장과 치장에 쓰는 비용을 낮추고 의상을 점차 캐주얼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몇몇의 대형 금융사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캐주얼 데이'로 정하고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조끼를 나눠주며 직원들에게 착용하게 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월가에서 이름난 금융사들은 너도나도 파타고니아에 직원용 플리스 주문을 시작했고 이후 해당 아이템은 월가의 상징 같은 아이템이 된다. 파타고니아 플리스는 금융 위기 이전의 정장보다 더욱 그들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나 금융사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플리스 조끼의 왼쪽에는 파타고니아의 로고, 오른쪽엔 JP 모건, 노무라 증권, 베어드 등 각 금융사의 로고가 박혀있었기에 월가의 금융인들에게는 플리스 베스트가 본인들의 소속과 지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재밌게도 금융 위기 이전의 상징이었던 럭셔리 정장이 파타고니아로 옮겨간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친환경적인 이미지는 밀레니얼 세대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잇었기에, 증권사가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제공하느냐가 월가로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친환경 브랜드의 상징인 파타고니아가 자본주의 최전선에 서있는 월가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2019년 파타고니아는 B-corporation(매출의 1%를 환경보호에 쓰거나 공익에 걸맞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에 부여)인증을 받은 기업에만 제품을 판매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후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제공하는 증권사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만, 현재도 미국의 맨해튼에서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입은 금융인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오히려 월가라는 명예와 친환경이라는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가진 아이템이 된 상황이다.
금융 위기로 인해 탄생한 아이템이 현재는 월가의 상징이 된 파타고니아 플리스에 관한 이야기. 이후 월가의 복장은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